
지난 시즌 WK리그에서 상대 팀 감독으로 서로를 만난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
1990년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여자축구 1세대가 나아간 모든 발걸음은 말 그대로 개척이었다. 황무지를 개척해나가며 꿈을 키웠던 여자축구 1세대는 이제 WK리그의 감독으로서 또 다른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10일 경주황성체육공원 3구장에서 열린 경주한수원과 서울시청의 WK리그 경기는 그래서 특별했다. 여자축구 1세대로 함께 활약한 송주희 경주한수원 감독과 유영실 서울시청 감독의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두 감독 모두 지난 시즌부터 WK리그 감독을 맡아 올해 2년 차를 맞이했다.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은 경주한수원의 승리로 끝났다.
여자축구 1세대의 인생은 곧 여자축구의 역사와도 같다. 두 감독의 삶을 통해 지난 여자축구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편에서는 지도자로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1편과 연결.
인생 2막, 지도자의 길
유영실 감독에게 지도자의 길은 오래도록 꿨던 꿈이었다. 그는 “선수 때부터 많은 지도자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이 길이 정말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선수는 개인이라 한계가 생기는데 지도자는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유영실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이후의 지도자 생활에 대한 생각을 항상 했다. 지도자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선수 생활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선수 때 더 많은 경험을 해보려했고 전반적인 준비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유영실 감독과 달리 송주희 감독에게 지도자의 길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송주희 감독은 “합숙 문화 안에서 가정과 사회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였다. 그래서 지도자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첫 아이를 낳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충남일화(해체)에서 함께 계셨던 강재순 감독님이 집에 찾아오셨다. 제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러 오신다고 하셨는데 찾아오셔서 ‘너 지도자 할 생각 없니?’라고 물어보셨다. 너무 감사해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남편도 흔쾌히 하라고 이야기해줬다”고 밝혔다.
송주희 감독은 “감독님이 찾아오셨던 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강재순 감독님이 아니셨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현재 화천KSPO 감독님으로 계시기 때문에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되지만 늘 감독님에 대한 존경심과 지도자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신 감사함은 잊지 않고 살고 있다”며 각별한 마음을 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도자 생활
선수 생활은 비슷하게 한 두 감독이었지만 지도자 생활은 사뭇 달랐다. 송주희 감독은 화천 KSPO에서 9년간 코치 생활을 했다. 유영실 감독은 동산정산고에서 6년간 선수들을 가르치다 서울시청에서 1년간 코치 생활을 했다. 이후 대덕대에서 4년간 감독으로 생활했다.
송주희 감독은 “화천KSPO에 있을 때 강재순 감독님께서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지도자가 처음이다 보니 팀을 이끌어갈 때 어떤 것이 필요한지, 팀 빌딩은 어떻게 하고, 선수와는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무엇보다 코치를 많이 믿어주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며 코치 시절에 관해 이야기했다.
유영실 감독은 동산정산고 시절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던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처음에는 멋모르고 눈높이를 맞춰주는 지도자가 되자고 생각했다. 해보니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그 외에도 선수 시절 막연하게 그렸던 그림과 지도자를 직접 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건 무척 달랐다”며 “선수 잠재력을 꺼내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선수한테 필요한 것을 해주면서 오히려 함께 성장했던 것 같다. 그래도 못 해줬던 것들이 생각난다”고 밝혔다.
유영실 감독은 서울시청에 1년간 머무른 후 대덕대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갔다.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그는 “대덕대가 강팀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연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환경이 안 좋았다. 일단 선수가 여덟 명밖에 안 남아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유영실 감독은 “많이 당황했다. 그래도 2차 모집이 가능한 상태라 신입생도 더 받고, 축구를 그만둔 선수들을 찾아가 설득을 했다. 이후 겨우 이십 명 남짓으로 축구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축구부를 해체하려는 분위기도 있었다. 자꾸만 어려운 일이 생기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 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를 믿고 있는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영실 감독은 코치 한 명 없이 혼자 대덕대를 이끌었다. 결국 대덕대는 2016년 유영실 감독 부임 후 2년 만에 여왕기와 선수권대회의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당시에 여러 후배 지도자들이 많이 도와줬다. 지금 서울시청에서 함께 하는 안태화 코치도 그중 하나였다. 대전체육회에서도 많이 도와주셨다. 성적을 낸 일도 좋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던 대덕대 축구부를 살린 게 가장 값지다고 생각한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유영실 감독.
마침내 WK리그 감독으로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은 운명처럼 WK리그 감독으로 재회했다. 두 감독 모두 2020시즌부터 팀을 이끌게 됐다. 유영실 감독은 서울시청의, 송주희 감독은 경주한수원의 지휘봉을 잡았다.
송주희 감독에게 지도자 길을 걷게 된 것이 예정되지 않은 일이었듯 경주한수원 감독 역시 생각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그는 “사실 당시 지도자로서 한계에 도달했을 때였다. 더는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경주한수원 감독 채용 공고를 봤다. 그걸 보니 그동안의 시간을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재순 감독님을 찾아뵙고 내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해보라고 하셨다. 사실 합격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감독님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발품을 팔아서 알아봤다. 그렇게 준비한 것을 문서로 만들면서 점차 지도자 생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더라”며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행복은 딱 하루였다.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니까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송주희 감독은 “경주한수원에 처음 갔을 때 굉장히 놀랐다. 사실 좋아하던 게 직업이 되면 애정이 식을 수 있다. 선수도 똑같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여전히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했다. 표현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라 말은 못했지만 선수들이 너무 예뻤다. 아마 반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감독으로서 팀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선수들은 이미 가능성이 많고 팀을 생각하는 태도도 훌륭하다. 문화는 자유롭게, 훈련은 명확하게. 이 두 가지 균형을 맞추며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함께 하는 코치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고 선수들도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모두에게 고맙다”며 애정을 보였다.
유영실 감독은 “서울시청에 부임하기 전에도 그렇고 부임한 직후에도 팀 성적이 좋진 않았다. 그래도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고 싶지 않아서 작년에는 경기에서 마음을 많이 비웠다. 어떤 팀이든 상대를 잘 몰라서 더 그랬다. 지난 1년은 엄청난 경험이기도 했다. 작년부터 시작한 리빌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점점 팀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시청만의 색깔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영실 감독이 만들어가고 있는 서울시청은 점차 발전하고 있었다. 개막전 대패를 딛고 2연승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8팀 중 7위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분명한 성장세가 보였다. 그는 “기술적인 부분이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동력에서 밀리면 많은 걸 수행하기가 어렵다. 정신적인 부분부터 스피드, 지구력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밝혔다.
동료에서 경쟁자로, 감독으로의 재회
같은 해부터 감독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함께 경기장을 누비던 동료에서 지략 대결을 펼쳐야하는 감독으로 재회했다. 경쟁자가 되었지만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은 개인적인 친분을 넘어 여성 감독으로서 서로에게 각별한 마음을 나타냈다.
송주희 감독은 유영실 감독과의 재회가 꼭 드라마나 영화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시즌 유영실 감독과 처음으로 경기를 하는데 참 뭉클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같은 학교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함께 꿈을 키워온 두 사람이 최상위 리그에서 감독 대 감독으로 만난다는 일이 굉장히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이 상황에 감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송주희 감독은 “유영실 감독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그렇게 영리한 사람과 감독으로 만난다는 것은 내가 배울 것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좋았다”고 밝혔다. 그는 “유영실 감독뿐 아니라 가장 먼저 여성 감독으로서 WK리그를 잘 이끌어주셨던 이미연 보은상무 감독님과 현재 인천현대제철의 감독대행을 맡고 계신 김은숙 코치님 또한 같은 리그에서 경쟁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모두 응원하고 있다. 물론 경쟁에서는 다르다. 한 치 앞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웃었다.
유영실 감독 역시 송주희 감독과의 재회에 대해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는 “WK리그 감독이 동시에 된 것부터 정말 묘했다. 정말 깊은 인연인 것 같고, 어쩌면 운명 같기도 하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리가 1세대로서 여자축구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주희 감독뿐 아니라 점차 여자축구 1세대 출신 지도자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송주희 감독.
‘여자축구 1세대’가 꿈꾸는 미래
유영실 감독은 “여자축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WK리그의 여성 감독으로서 활약하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는 좋은 동기부여다. 불모지를 묵묵히 걸어온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은 앞으로의 길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유영실 감독은 “미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낸 오늘이 나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미래보다는 오늘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도 감독으로서는 전략가의 색깔을 가진 사람으로 남으면 좋을 것 같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라”며 웃었다.
송주희 감독은 “먼 미래에는 좋은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후배들에게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이 온다. 그런 연락을 받으면서 좋은 감독 이전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훌륭한 원로가 되어서 후배들, 제자들에게 많은 걸 나눠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송주희 감독은 여자축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봄에 열린 전국대회에서 초등부 참가 팀이 여덟 팀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생 중에도 잘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데 팀이 없으니 갈 곳이 없어져서 꿈을 접어버리는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큰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훗날 WK리그 참가 팀이 많아지고 여자축구가 인기 종목이 되는 미래를 꿈꾸지만 그전에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부터 성장해야 WK리그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성의주 KFA 인턴기자
사진=대한축구협회
지난 시즌 WK리그에서 상대 팀 감독으로 서로를 만난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1990년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여자축구 1세대가 나아간 모든 발걸음은 말 그대로 개척이었다. 황무지를 개척해나가며 꿈을 키웠던 여자축구 1세대는 이제 WK리그의 감독으로서 또 다른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10일 경주황성체육공원 3구장에서 열린 경주한수원과 서울시청의 WK리그 경기는 그래서 특별했다. 여자축구 1세대로 함께 활약한 송주희 경주한수원 감독과 유영실 서울시청 감독의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두 감독 모두 지난 시즌부터 WK리그 감독을 맡아 올해 2년 차를 맞이했다.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은 경주한수원의 승리로 끝났다.
여자축구 1세대의 인생은 곧 여자축구의 역사와도 같다. 두 감독의 삶을 통해 지난 여자축구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편에서는 지도자로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1편과 연결.
인생 2막, 지도자의 길
유영실 감독에게 지도자의 길은 오래도록 꿨던 꿈이었다. 그는 “선수 때부터 많은 지도자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이 길이 정말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선수는 개인이라 한계가 생기는데 지도자는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유영실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이후의 지도자 생활에 대한 생각을 항상 했다. 지도자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선수 생활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선수 때 더 많은 경험을 해보려했고 전반적인 준비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유영실 감독과 달리 송주희 감독에게 지도자의 길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송주희 감독은 “합숙 문화 안에서 가정과 사회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였다. 그래서 지도자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첫 아이를 낳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충남일화(해체)에서 함께 계셨던 강재순 감독님이 집에 찾아오셨다. 제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러 오신다고 하셨는데 찾아오셔서 ‘너 지도자 할 생각 없니?’라고 물어보셨다. 너무 감사해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남편도 흔쾌히 하라고 이야기해줬다”고 밝혔다.
송주희 감독은 “감독님이 찾아오셨던 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강재순 감독님이 아니셨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현재 화천KSPO 감독님으로 계시기 때문에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되지만 늘 감독님에 대한 존경심과 지도자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신 감사함은 잊지 않고 살고 있다”며 각별한 마음을 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도자 생활
선수 생활은 비슷하게 한 두 감독이었지만 지도자 생활은 사뭇 달랐다. 송주희 감독은 화천 KSPO에서 9년간 코치 생활을 했다. 유영실 감독은 동산정산고에서 6년간 선수들을 가르치다 서울시청에서 1년간 코치 생활을 했다. 이후 대덕대에서 4년간 감독으로 생활했다.
송주희 감독은 “화천KSPO에 있을 때 강재순 감독님께서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지도자가 처음이다 보니 팀을 이끌어갈 때 어떤 것이 필요한지, 팀 빌딩은 어떻게 하고, 선수와는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무엇보다 코치를 많이 믿어주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며 코치 시절에 관해 이야기했다.
유영실 감독은 동산정산고 시절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던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처음에는 멋모르고 눈높이를 맞춰주는 지도자가 되자고 생각했다. 해보니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그 외에도 선수 시절 막연하게 그렸던 그림과 지도자를 직접 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건 무척 달랐다”며 “선수 잠재력을 꺼내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선수한테 필요한 것을 해주면서 오히려 함께 성장했던 것 같다. 그래도 못 해줬던 것들이 생각난다”고 밝혔다.
유영실 감독은 서울시청에 1년간 머무른 후 대덕대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갔다.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그는 “대덕대가 강팀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연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환경이 안 좋았다. 일단 선수가 여덟 명밖에 안 남아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유영실 감독은 “많이 당황했다. 그래도 2차 모집이 가능한 상태라 신입생도 더 받고, 축구를 그만둔 선수들을 찾아가 설득을 했다. 이후 겨우 이십 명 남짓으로 축구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축구부를 해체하려는 분위기도 있었다. 자꾸만 어려운 일이 생기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 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를 믿고 있는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영실 감독은 코치 한 명 없이 혼자 대덕대를 이끌었다. 결국 대덕대는 2016년 유영실 감독 부임 후 2년 만에 여왕기와 선수권대회의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당시에 여러 후배 지도자들이 많이 도와줬다. 지금 서울시청에서 함께 하는 안태화 코치도 그중 하나였다. 대전체육회에서도 많이 도와주셨다. 성적을 낸 일도 좋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던 대덕대 축구부를 살린 게 가장 값지다고 생각한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유영실 감독.마침내 WK리그 감독으로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은 운명처럼 WK리그 감독으로 재회했다. 두 감독 모두 2020시즌부터 팀을 이끌게 됐다. 유영실 감독은 서울시청의, 송주희 감독은 경주한수원의 지휘봉을 잡았다.
송주희 감독에게 지도자 길을 걷게 된 것이 예정되지 않은 일이었듯 경주한수원 감독 역시 생각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그는 “사실 당시 지도자로서 한계에 도달했을 때였다. 더는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경주한수원 감독 채용 공고를 봤다. 그걸 보니 그동안의 시간을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재순 감독님을 찾아뵙고 내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해보라고 하셨다. 사실 합격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감독님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발품을 팔아서 알아봤다. 그렇게 준비한 것을 문서로 만들면서 점차 지도자 생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더라”며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행복은 딱 하루였다.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니까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송주희 감독은 “경주한수원에 처음 갔을 때 굉장히 놀랐다. 사실 좋아하던 게 직업이 되면 애정이 식을 수 있다. 선수도 똑같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여전히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했다. 표현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라 말은 못했지만 선수들이 너무 예뻤다. 아마 반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감독으로서 팀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선수들은 이미 가능성이 많고 팀을 생각하는 태도도 훌륭하다. 문화는 자유롭게, 훈련은 명확하게. 이 두 가지 균형을 맞추며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함께 하는 코치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고 선수들도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모두에게 고맙다”며 애정을 보였다.
유영실 감독은 “서울시청에 부임하기 전에도 그렇고 부임한 직후에도 팀 성적이 좋진 않았다. 그래도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고 싶지 않아서 작년에는 경기에서 마음을 많이 비웠다. 어떤 팀이든 상대를 잘 몰라서 더 그랬다. 지난 1년은 엄청난 경험이기도 했다. 작년부터 시작한 리빌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점점 팀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시청만의 색깔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영실 감독이 만들어가고 있는 서울시청은 점차 발전하고 있었다. 개막전 대패를 딛고 2연승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8팀 중 7위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분명한 성장세가 보였다. 그는 “기술적인 부분이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동력에서 밀리면 많은 걸 수행하기가 어렵다. 정신적인 부분부터 스피드, 지구력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밝혔다.
동료에서 경쟁자로, 감독으로의 재회
같은 해부터 감독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함께 경기장을 누비던 동료에서 지략 대결을 펼쳐야하는 감독으로 재회했다. 경쟁자가 되었지만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은 개인적인 친분을 넘어 여성 감독으로서 서로에게 각별한 마음을 나타냈다.
송주희 감독은 유영실 감독과의 재회가 꼭 드라마나 영화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시즌 유영실 감독과 처음으로 경기를 하는데 참 뭉클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같은 학교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함께 꿈을 키워온 두 사람이 최상위 리그에서 감독 대 감독으로 만난다는 일이 굉장히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이 상황에 감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송주희 감독은 “유영실 감독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그렇게 영리한 사람과 감독으로 만난다는 것은 내가 배울 것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좋았다”고 밝혔다. 그는 “유영실 감독뿐 아니라 가장 먼저 여성 감독으로서 WK리그를 잘 이끌어주셨던 이미연 보은상무 감독님과 현재 인천현대제철의 감독대행을 맡고 계신 김은숙 코치님 또한 같은 리그에서 경쟁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모두 응원하고 있다. 물론 경쟁에서는 다르다. 한 치 앞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웃었다.
유영실 감독 역시 송주희 감독과의 재회에 대해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는 “WK리그 감독이 동시에 된 것부터 정말 묘했다. 정말 깊은 인연인 것 같고, 어쩌면 운명 같기도 하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리가 1세대로서 여자축구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주희 감독뿐 아니라 점차 여자축구 1세대 출신 지도자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송주희 감독.‘여자축구 1세대’가 꿈꾸는 미래
유영실 감독은 “여자축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WK리그의 여성 감독으로서 활약하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는 좋은 동기부여다. 불모지를 묵묵히 걸어온 유영실 감독과 송주희 감독은 앞으로의 길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유영실 감독은 “미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낸 오늘이 나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미래보다는 오늘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도 감독으로서는 전략가의 색깔을 가진 사람으로 남으면 좋을 것 같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라”며 웃었다.
송주희 감독은 “먼 미래에는 좋은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후배들에게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이 온다. 그런 연락을 받으면서 좋은 감독 이전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훌륭한 원로가 되어서 후배들, 제자들에게 많은 걸 나눠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송주희 감독은 여자축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봄에 열린 전국대회에서 초등부 참가 팀이 여덟 팀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생 중에도 잘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데 팀이 없으니 갈 곳이 없어져서 꿈을 접어버리는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큰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훗날 WK리그 참가 팀이 많아지고 여자축구가 인기 종목이 되는 미래를 꿈꾸지만 그전에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부터 성장해야 WK리그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성의주 KFA 인턴기자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