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여자 축구 선수들에 평양 아파트 선물“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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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자 축구, 강국들 쩔쩔 맨 강국

대표팀 발탁되면 선수·가족 인생 바뀌어

2011년 도핑 의혹 ‘출전 금지’ 후 부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허은별이 역전골을 넣자 북한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인천=서영희 기자

영국 BBC방송은 13일(현지시간) ‘여자 축구의 잠자는 거인, 북한의 부상과 몰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보다 생활 수준이 크게 뒤떨어져 있음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여자 축구 국가 중 하나”라며 북한 여자 축구를 집중 조명했다.


2007년 여자 월드컵 개막전에서 마지막 골로 2-2 무승부로 북한과의 경기를 마무리한 헤더 오라일리(39)는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정말 엄청 힘들었다”고 BBC에 말했다. 오라일리는 “그들에게서 공을 뺏기 어려웠다”며 “그들은 여기저기서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2007년 여자 월드컵에서 미국과 비긴 북한은 스웨덴과 나이지리아를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했지만 8강에서 독일에 패했다. 독일은 이 대회에서 우승한 팀이다.


그는 북한 여자 축구팀에 대해 “그냥 불확실성의 구름 같았다”며 “그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영상 자료는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북한과 경기를 할 때마다 그들은 항상 미스터리였다는 게 오라일리의 설명이다. 실력이나 전술을 가늠할 수 없는 데다 강하기까지 한 상대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오라일리는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로 세 차례 올림픽 금메달과 한 차례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선수다. 2017~2018년에는 잉글랜드 여자 프로축구 최고 수준인 아스널에서 뛰었다.


“김정일, 여자 축구 직접 후원”

2007년 여자 월드컵 참가 당시 미국은 세계 랭킹 1위이자 2차례 우승한 전력이 있는 팀이었다. 이때 북한은 세계 랭킹 5위로 앞서 10년간 아시아 지역 대회에서 3차례 우승한 강팀이었다.


북한 여자 축구 유소년 기록은 더 좋다. 2016년 U-20 여자 월드컵에서 북한은 결승 토너먼트에서 스페인, 미국, 프랑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더 어린 U-17 팀은 해당 연령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북한 여자 축구를 취재한 적 있는 오스트리아 영화감독 브리기트 바이히는 북한에서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북한이 여자 축구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 역시 최고 지도자에게서 비롯된다고 BBC에 말했다.


바이히는 “선수들은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가 여자 축구를 직접 후원한다’고 우리에게 항상 말했다”며 “물론 그들은 모든 것을 지도자와 직결시켰고 그의 지도, 지원, 바람 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바이히는 5년간 북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밀착 취재해 2009년 다큐멘터리 ‘하나, 둘, 셋’을 제작했다.


북한이 여자 축구에 꽂힌 이유

북한은 여자 월드컵 창설 초기부터 계획적으로 선수단을 육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바이히는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여자 축구에 관심을 가진 시점이 1986년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멕시코에서 열린 제45회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에서는 키 1.5m인 노르웨이 대표 엘렌 빌레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단에 올라 여성을 위한 월드컵을 요구했다. 이 연설은 여자 월드컵 창설로 이어졌다. 빌레는 ‘여자 축구의 어머니’로 불린다.


당시 총회 현장에 있던 북한 대표단이 평양으로 돌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우리가 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을 수 있다고 바이히는 상상했다. 그는 “북한은 경제, 과학, 인권 등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이런 나라들은 일부 스포츠에서 잘할 수 있다”며 “위에서부터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히는 “김정일이 여자 축구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완전히 허황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마도 그는 그걸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로 여겼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북한은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정식 축구 훈련을 받게 하고 전국에서 스카우트들이 인재를 찾아내도록 했다고 한다. 최고의 선수들은 우수한 중앙 학교와 여러 군(軍) 소속 팀에 배치해 국가적으로 지원했다.


대표팀 발탁되면 가족 인생 바뀐다

선수들에게는 거액의 몸값이나 해외 이적이 아니라 ‘평양에 살 수 있는 권리’가 무엇보다도 큰 보상이었다고 한다. 농촌은 식량과 의료, 난방 등 부족으로 열악한 반면 평양은 상대적으로 생활 수준과 여가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바이히는 “시골이 아닌 평양에서 사는 건 특권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선수들은 지도자로부터 평양의 아파트를 선물로 받았고 부모를 평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며 “팀에 발탁되는 것은 선수와 가족 전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북한 여자 축구선수)은 모두 축구를 사랑했지만 지도자와 국가가 큰 동기였다”며 “국가의 영광이 전부고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그것이 그들이 자라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2000년대에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김일성경기장이 여자 축구를 보려는 관중으로 가득했다고 BBC는 설명했다. 축구 강국인 잉글랜드에서도 여자 축구팀이 1만명을 모으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바이히는 “(북한에서) 그들은 스타”라며 “팬들은 그들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 축구팀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도 있었는데 부모가 축구를 반대하거나 금지된 사랑을 하는 등 허구의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바이히가 취재한 북한 선수들은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키가 크고 힘도 세다”며 “그들은 충분한 음식을 비롯해 우리에게 없는 온갖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신은 너무 강해서 아무도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바이히에게 말했다.


강했던 북한 여자 축구의 몰락

북한 여자 축구팀은 2011년 독일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이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을 보이며 도핑 의혹에 휩싸였다. 당시 북한 측은 사향노루 원료로 만든 한약을 먹은 탓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후 오랫동안 여자 월드컵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출전 금지 조치로 2015년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고, 2019년에는 한국에 밀려 28년 만에 아시아 예선에서 탈락했다. 호주·뉴질랜드가 공동 개최한 지난해 대회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불참했다.


북한 여자 축구는 지난해 가을 아시안 게임으로 복귀해 은메달을 땄다. 올해 2월에는 3차 예선 2차전에서 일본에 2-1로 져 2024 파리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BBC는 “북한 팀이 앞으로 어느 정도의 힘을 모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며 “북한에 관한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미스터리”라고 했다.


올해 6월 14일 발표된 FIFA 여자 축구 랭킹에서 북한은 10위에 올라 있다. 20위인 한국에 비하면 높은 순위다.

강창욱 기자(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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